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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비일상의 침입으로 해체된 일상의 이면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덧글 0 | 조회 162 | 2021-04-15 00:05:46
서동연  
과연 비일상의 침입으로 해체된 일상의 이면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그것을 파헤치는 작업은 하나의 실험이다.지당한 의견이었다. 제대로 잘할 수 있다면 말이지라고 나는 말했다. 우리는 처음에는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대해 얘기했다. 열차의 발착 시간이 제멋대로라는 둥, 식사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둥. 그런데 어쩌다 얘기가 그 쪽으로 흘렀는지 기억하고 있지만, 두 병째 캔티 와인이 테이블에 놓여졌을 때, 그는 이미 그 이야기를 시작한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이따금 응, 응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이야기를 누구에겐가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장소가 중부 이탈리아의 조그만 마을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포도주가 향그런 83년도 산 콜티브오노가 아니었더라면, 난로에 불이 타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 이야기를 영영 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냈을지도 모른다.나는 옛날부터 자신은 따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였어. 늘 자기 주위로 틀 같은 것이 보이고, 거기에서 삐져나가지 않으려고 주의하면서 살아왔지. 언제나 눈앞에 가이드 라인 같은 게 보여. 친절한 고속도로 같은 것이지. 무슨 무슨 방면은 오른쪽 차선으로 붙어라, 이 앞에는 커브길이 있다, 추월 은 금지한다, 는둥 말이야. 그 지시대로만 쫓아가면 길을 잘못 드는 일없이 갈 수 있지. 어디로든. 그런 식으로 사는 나를 사람들을 칭찬해 주었어. 모두가 감탄을 하면서 말이야. 어렸을 적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런 것이 보일 테지 하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나는 포도주 잔을 들어 불 앞에 비추며, 잠시 그것을 바라보았다. 내 인생은, 적어도 처음 부분을 그렇다는 뜻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아주 순탄한 것이었어. 문제라 할만한 문제는 아무 것도 없었지. 하지만 그
얘기해 주겠어? 얘기하고 싶지 않아라고 그녀는 말했다. 얘기하는 편이 좋다니까. 누군한테든 털어놓고 나면, 그 바이브레이 션 같은 게 없어지니까 말이야 아니, 그래도 지금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는 남자의 알몸에 안겨 있었다. 멀리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가슴은 천천히 힘찬 고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있지라고 그녀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는데잠을 이룰 수 없게 된 첫날 밤의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 때 무서운 꿈을 꾸고 있었다. 아주 암울하고, 끈적끈적한 꿈이었다. 꿈의 내용까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불길한 감촉뿐이다. 그리고 그 꿈의 정점에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더 이상 꿈속에 잠겨 있었다가는 되돌이킬 수 없을 위태로운 시점에서, 무언가가 나를 현실로 끌어 잡아당기듯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눈을 뜨고서도 한참이나, 나는 하아하아 숨을 크게 쉬었다. 손발이 저려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꼼짝못하고 있으려니, 마치 동굴 속에 누워 있는 것처럼 자신의 숨결만이 유난스레 커다랗게 들렸다. 꿈이었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천장을 향하고 누워, 가만히 숨결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심장이 격렬하게 활동하고, 거기에 재빨리 혈액을 공급하기 위하여, 폐가 풀무처럼 천천히 그리고 조그맣게 수축하였다. 그러나 그 진폭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서서히 감소하였다. 도대체 지금은 몇 시쯤일까,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베갯머리에 있는 시계를 보려 했지만, 고개를 제대로 돌릴 수가 없었다. 그 때 발 밑으로 문득 무언가 보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희미하고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심장도 폐도, 내 몸 속의 모든 기관이 순간에 얼어붙은 것처럼 정지하였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그 그림자 쪽을 보았다. 내가 눈을 부릅뜨자, 그러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림자는 급격하게 똑똑한 형태를 띠기 시작하였다.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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